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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명상 | 코칭을 받는 것 배울 학學

正文

배워 아는 것은 맞다. 그러나 아는 것이 배움의 전부는 아니다. 배움은 알아가는 것보다 끊임없이 아는 것을 익혀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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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하나 있다. "코치는 선수를 가르치는 사람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또 묻자. "그럼 모든 코치는 선수보다 잘 하겠네? 그럼 왜 선수가 경기를 뛰지 코치가 안 뛰고?"
이쯤 되면 무슨 말인지 안다.
코치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코칭은 가르치는 게 아니고 잘하도록 지켜봐 주는 것이다. 
한국이 나은 세계 최고의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만 봐도 쉽게 안다. 세상의 그 어떤 코치도 김연아보다 높은 점수를 내지 못한다. 그런데 그 김연아는 또 코치가 없으면 자기 점수를 갱신하지 못한다. 코치는 그런 것이다. 김연아를 항상 지금의 김연아보다 나을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이 바로 코치다. 
그게 바로 배울 학이다. 학은 실은 코칭 할 학이다. 갑골문에 그 의미가 잘 나타난다. 갑골자에서 현재 간자까지 배울 학의 변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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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학은 교로도 읽는다. 배울 학이고 가르칠 교다. 아쉽게도 점차 배울 학을 절반의 뜻만으로 쓴다. 서양의 코칭은 코치의 관점에서 나온 단어다. 코칭 한다고 하고, 코칭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갑골문에서는 배우고 가르치는 관점이 구분이 없다. 동시에 나온다. 금문에 들어서 아들 자子 자 들어간다. 아마 이때부터 배운다는 게 아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게 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갑골문은 두 가지 자형이 쓰였다. 보통 첫 번째 단순한 자와 두 번째 복잡한 자가 쓰였는데, 단순한 자에 집 위에 있는 x 모양에 양쪽에서 서로 주고받는 손이 나오는 게 다르다.
결국 의미의 핵심은 단순한 자에 있다. 많은 학자들은 x를 산법에 쓰였던 가지나무라 한다. 셈을 가르치는 집이라는 뜻이 배울 학자의 본래 의미다. 코칭의 집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손이 들어간 것은 셈하는 법, 모양을 더 강조했다는 해석과 익힘을 손에서 손으로 전했다는 해석, 익힘을 감독했다는 해석 등이 있다. 실제 행서에서 보이듯 손으로 회초리를 들고 때리는 부호가 들어가기도 했다. 또 같은 부호가 들어가는 한자가 따로 만들어져 같이 쓰이기도 했다. 이 자형은 배울 학의 이체로 가르칠 교의 의미가 강조된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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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가르친다고 하니, 또 오해가 생긴다. 사실 가르치는 게 매번 새로운 것을 가르치는 게 아니다. 김연아에게 한 가지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 수백, 수천 번 코칭을 하는 것이지, 수백, 수천 가지의 기술을 매번 새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말이다.
한마디로 하나를 잘 배우도록 하는 게 코칭이요, 배우고 가르치는 학 자의 의미다.
그래서 학은 습과 같이 쓰였다. 익힐 습은 또 같이 살펴볼 기회가 있다. 논어의 명언은 배울 학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그 진의를 알고 실천할 수가 있다.

 

 

 

学而实习不亦说乎
xué ér shí xí bú yì yuè hū” 

 

 

코치 받고 때론 스스로 연습하면 기쁘지 아니한가! 

 

 

배우는 것을 새로운 것을 아는 것이라 국한하면 정말 불행해진다. 평생을 배웠는데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배움의 즐거움은 하나를 배워 점점 잘해갈 때 생긴다. 
붓을 잡으면 5년은 배워야 행필의 묘미를 안다. 쓴 게 한시다 보니 한시를 이해하는 즐거움도 얻는다. 악기를 잡아도 1년은 배워야 음악을 즐길 수 있다. 
배움은 인생을 즐기도록 한다. 인생은 즐길 수 있을 때 행복한 것이다. 노래를 부르고 싶을 때 가수 정도는 아니어도 부를 수 있어야 가슴의 엉킴이 남지 않는다. 붓을 들어 한 줄의 시를 써내 벽에 걸 수 있으면 인생이 달라진다. 수영을 해 선수는 아니어도 제대로 하는 이가 오래 즐기며 한다. 모든 게 같은 이치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 사회에 하나도 제대로 배운 사람을 만나기 힘들다. 
사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만 중시하는 사회에서 뭘 기대를 할까? 솔직히 지적 대화는 얕은 게 없다. 목수는 목공으로 생을 이야기하고, 푸추간 주인은 소 잡는 칼로 인생을 이야기하는 법이다. 천한 이의 말이지만, 그 정통함은 황제도 귀를 기울 이게 만든다. 동양 역사의 기록이 증언한다. 간단히 말 그대로 '일이관지'一以贯之의 도리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 사회 이런 이들을 만나기 힘들다. 삶의 정통함을 찾기 힘들다.
오히려 나이 60, 은퇴를 하고서야 진정한 배움의 길에 들어서는 이들을 적지 않게 보게 된다. 뒤늦게라도 들어선 사람은 그나마 행복한 사람이다. 은퇴 후 삶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공자는 나이 15세에 지우학志于学,배움에 뜻을 뒀다는 데 우리는 나이 60에도 두니 그게 불행의 시작이다. 모든 평범한 사람의 배움은 10년의 공부가 필요하다. 여기서 공부는 뜻을 이루는 데 들어가는 시간이라는 뜻이다. 하루 3시간씩 10년이면 요즘 서양에서 말하는 1만 시간의 법칙과 비슷해진다. 
하루 3시간을 투자해 10년 뒤부터는 즐길 수 있으면 삶이 행복한 데, 우리는 평생을 새로운 것을 얕게 배우는 데만 힘쓴다. 참 아쉬운 일이다. 본인 스스로도 아쉬움만 많다. 그게 글을 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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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청로(清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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